티스토리 뷰

오래된, 또는 중증 아토피를 가진 분들이, 여성으로서 임신에 대해 고민한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오늘도 역시 고민하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글을 쓴다. 

'아이들을 많이 키우고 싶은 것'과 '내가 임신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9살 어린 막둥이 동생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발적으로 육아를 도맡아 하던 나는, 아이가 자란다는 것에 대한 놀라운 신비를 중학생때부터 깨쳤다. 그때부터, 나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많이 키워야지, 나는 세 자매고, 이것도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으니까, 넷을 키워야지. 항상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다 내가 임신해서 낳아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토피의 대물림과 임신 기간 동안 아토피가 심해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때문이었다. 평생 아토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아토피는 유전이라는데, 내 아이에게 아토피라는 고통을 대물려주는 일이 과연 좋은 선택인가, 나도 아토피의 고통이 뭔지 아는데, 내 아이가 아토피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 나는 분명 마음이 3배 이상 힘들어질텐데, 그걸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아토피도 아니었는데, 내가 아토피안으로 살아가는 것에 항상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데 나는 그 죄책감이 더 심할텐데, 내 정신은 건강하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 내 아토피도 내가 돌봐야하는 판에 내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온전히 줄 수 있을까. 임신 중에는 없던 가려움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임신 중 약 복용과 연고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데, 10개월간 약 없이 아토피안으로서 임신 기간을 버틸 수 있을까, 다시 내가 중증 아토피로 가는 길이 되는 건 아닌가 등등... 걱정할 거리는 항상 차고 넘친다. 

내게 좋은 선택지는 공개입양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토피 유전자를 아이에게 주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일. 혹시라도 입양을 한 나의 아이가 아토피가 생기더라도, 훨씬 객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이의 치료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그 아이에게 아토피 유전자를 준 건 아니었으므로, 나 스스로를 자책할 시간에 최소한 아이를 더 보살필 수 있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육아를 꿈꾼 10대때부터 도서관에 가서 공개입양에 대한 책을 찾아읽고 유튜브를 통해 공개입양 가정에 대해 즐겨찾아보고, 몇 년 전에는 공개입양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며 입양 가정을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렇기에 내가 육아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다면 입양에 대해서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지난 포스팅에 쓴 것처럼 어떻게 임밍아웃을 했냐고? 내 아이를 가질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는 몇가지 고심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의견이었다. 연애 때에도 내가 입양을 원한다는 건 남편도 알았는데, 남편은 육아 중에 너무 힘들 때 내가 낳은 아이도 갖다 버리고 싶다는데, 입양 후에 아이의 친부모를 원망하며 그런 마음이 안 들 수 있는지 내게 물었다. 그 얘기는 성인이 된 남편에게 시어머니가 육아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했던 얘기를 남편이 나에게 한 거였다. 친지의 이야기엔 그럼 나도 친지의 경험으로 맞대응하자라고 생각한 나는, 우리 고모는 아기를 출산해서 키웠지만, 다 키우고 보니 아기는 낳은 정이 아니고 키운 정인 것 같다고 했다고 나는 박박 우겨댔었다. 오랜 연애 후에 결혼한 뒤에도 남편과 나는 같은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임신, 출산, 육아는 나 혼자의 의견만 우긴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기에, 남편의 입장에서 나도 많이 고민을 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우리부부에게 입양은 어렵울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공개입양 카페에서 나처럼 난임판정이 없는 30대 입양을 원하는 부부들은 대부분 입양 기관에서 입양을 거절했다. 입양을 원하는 비교적 젊은나이의 부부들은 입양 기관에서 자연임신 기간을 더 가져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기관은 대부분 난임시술까지 몇 차례 노력했지만 임신이 안된 부부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었다. 입양기관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부부들은 입양을 준비하는 1년 여간의 기간동안 갑자기 임신이 되어 입양을 취소하기도 하는 사례가 있었고, 그를 방지하고자 안정적으로 입양을 성공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난임시도를 내거는 것을 말이다. 나는 입양이 우리게에 현실적으로 요원한 일이고, 남편 또한 우리부부가 최소한 자연임신 - 난임시도까지 해봐도 아기가 생기지 않을 경우에는, 입양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연임신이 지금 내게 다가온 순서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목표가 생기면 돌진하는 나는 자연임신을 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움직였다. 내 또래로 보인 오니님에게 연락했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오니님에게 연락해서 고민을 말하니, 오니님은 아토피안으로서 셋째까지 얼마 전에 출산한 H님을 소개시켜주었다. 오니님 덕분에 실제 출산까지 한 아토피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H님은 임신 기간 듀피젠트를 병행하면서 셋째를 낳으셨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임상이기도 했다고 쾌활하게 말했다. 얼굴도 본 적없는 사이였지만, H님과는 아토피라는 주제로 연결되어 한시간동안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다. 벌써 1년 전 일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H님을 통해서 아토피안으로서 임신하는 것에 대한 용기를 얻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H님이 소개시켜주신 안지영 교수님에게 임신을 준비중인 아토피안으로서 상담을 받고 싶었다. 한달 동안은 매일 국립중앙의료원에 매일 전화를 걸어 예약 가능여부를 문의했었지만,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번번히 예약에 실패했다. 그 당시에 몇 개월 이후 예약을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빈 자리 예약 실패에 지쳤고, 몇 개월 이후 예약 상담은 너무 멀게 느껴져서 아예 예약을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개월 후라도 예약을 잡아서 천천히 안지영 교수님을 찾아뵙고 임신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눌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꼭 듀피젠트 상담을 하지 않더라도, 임산부 아토피안에 대해 많은 임상을 알고 계실 것이니까 말이다. 

아토피안으로서 오래도록 나는 많은 고민을 해왔기때문에, 내가 임신을 결정하기까지만 적었는데도 글이 길어졌다. 다음 포스팅은 실제 임신 시도 이야기와 내가 어떻게 연고와 약 없이 지금 아토피로서 여름을 나고 있는지 적어보도록 하겠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