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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여름, 너도 왠지 갑작스러운 더위로 갑자기 심해진 아토피 때문에 마음의 몸살을 앓고 있을 것 같아서 편지를 써. 너는 지금 또 23년의 여름이 가물가물할 거야. 아마 그래서 너는 해마다 겪는 여름의 심한 아토피가 또 낯설고, 익숙지 않아 우울할거야.
약 20일간 올 여름에 깊은 우울에 머물렀어. 5월 18일 쯤 갑자기 더워진 한낮 더위가 원인의 시작이지. 갑작스럽게 더워진 온도차가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무겁게 했어. 이렇게 갑자기 더워진 날, 그날 하루종일 넉다운이 되어있었어. 왜냐하면 나는 수십년간 이런 무더위가 온 날들 후에는 아토피가 심해지는 걸 아니까, 그걸 몸소 겪어왔으니까, 다가올 두려움이 예정되어 있으니 난 무서워서 방어기제로 그냥 딱 마음도 몸도 정지!해버리는 거 같아. 심해진 아토피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내 몸이 이렇게 다운되어 모든 체계가 정지되는 거 같아. 생각도 잘 안되더라고.
그런 날 밤은 어김없이 밤새 내내 긁어대다가 온몸이 상처로 가득차는 그런 날이잖아. 등, 배, 엉덩이, 가슴, 겨드랑이 등등 몸통을 주위로 할퀴는 며칠의 밤. 씻고 나와서 로션을 바르면 상처가 따끔따끔대서 너무 피부가 쓰라린 그런 날 말이야. 시원한 물로 피부에 가득찬 열감을 내려줬는데도 항상 이맘때는 그렇더라. 내 생각에는, 아마 내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엄청 소동이 일어나고 그게 피부로 나타나는 것 같아. 날이 더워지면 몸이 빨리 일정온도를 찾기 위해 내부에 열을 빨리 어떻게든 내려야하는데, 난 그게 항상 원활하지가 않은 것 같더라구. 23년 5월에 며칠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씻고 나온 나를 보고 깜짝놀라했는데, 24년에도 그럴지도 모르지 너무 놀라지는 말아.
며칠 밤을 할퀴면서 자고, 심해진 내 피부가 우울의 1단계고,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는 관문이 있지. 여름이라서 점점 짧아지는 옷을 입게 되잖아. 나만 입는 게 아니라 출퇴근을 하면서 스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입는 거, 그걸 보는 게 괴로워. 그 사람들이 너무도 부러워. 사람들 눈에 쉽게 보이는 부분인 내 목덜미와 팔, 손은 오래된 상처의 흔적으로 검게 착색이 되고 얼룩덜룩한데다가, 밤새 긁은 상처로 울긋불긋하고 딱지까지 앉아 있잖아. 그런데 나를 스치는 사람들의 손목은 너무도 뽀얗고, 목덜미는 가느다랗고 하예. 팔은 또 어떻구. 봄까지 긴팔로 가려져서 햇빛도 비추지 않았던 팔의 매끈하고 정돈된 피부결은 얼마나 고와보이는데. 너무 주눅이 들어. 11살에 한여름에도 상처때문에 긴팔을 입고 하교를 하면서, 학생회장인 금은방집 딸내미였던 그 아이의 우윳빛 정강이 피부를 너무도 도려내고 싶었던 그날 나는 속으로 정말 많이 울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다르진 않은 거 같아. 그래서 올해는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옷을 네벌이나 샀어. 옷이 없다고 합리화하면서 샀는데, 옷장은 지금도 여름 옷으로 적당하긴해. 사실은 내 깊은 마음은 내 드러나보이는 피부 대신, 예쁜 옷으로 나를 뽐내고 싶은 욕심이 엄청 자리하거든. 그래서 그냥 샀어. 두 벌 정도 더 사고 싶은 욕심은 지금 엄청 엄청 참고 있단다 ㅎㅎ 24년에 너가 돈을 더 잘 벌면 좀 더 사.
비교하면 안된다는 말 있잖아, 몰라서 비교하는 건 아닌 거 같아. 비교 하는 그 사람 마음은 더 지옥같은 거 너는 잘 알지? 그래서 나도 지금 안하고 싶은데... 나는 가질 수 없는 어떤 걸 사람들이 너무도 평범하게 너무도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걸 볼때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있어. 비교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처럼 남들이 너무도 평범하게 가지고 있는걸 가져본 적이 얼마나 없는지 헤아려보고 나서 말했으면 좋겠어, 그치? 조금이라도 만성질병이 있는 사람이면 이 기분 알 거 같아. 또는 장애가 있는분들은 뭐 지금의 나보다도 절실히 비교에 대해 공감하겠지. 근데 나는 아토피가 피부장애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하루 대부분 시간을 내 핸디캡에 대해서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산다는 거, 그게 장애인 것 같아.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장애라고 한다고 국어사전에 적혀있어. 여기서 '신체=>피부', '정신능력 => 마음' 이 두 단어만 바뀌면 딱 아토피네.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도 마음에 결함이 수없이 많잖아.
여기까지 생각하면서 쭉오니, 새삼스럽게 내가 대단하다. 피부의 제 기능을 못하는 채로, 마음에 결함이 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이 순간 사회적인 동물로 사람들과 관계도 맺으면서, 밥도 앉히고, 청소도 하고, 어떤 하나의 사회 속 개체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존재다, 나는. 말이나온 김에, 나는 그런 대단한 존재라는 걸 상기해주면 좋겠다. 중증 아토피를 겪은 사람들 모두 칭찬하고 싶어. 가족과 적은 친구들과만이라도 내 삶을 이 사회 안에서 유지해나간다는 게 어려운데, 그렇게 살아가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해. 아토피가 심해지지 않기 위해 하루 일과에 곳곳이 배치한 수십가지 피부를 위한 일들을 병행하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나만해도 손바닥에 아토피가 있어서 책상에 편히 내 손바닥을 책상면에 닿은채로 오랫동안 키보드로 타자를 치거나, 마우스를 잡고 오랫동안 손바닥을 유리에 닿은채로 유지가 안될 때가 있어서 몇 번씩 손바닥 위치를 바꿔주는 건 일상이지. 땀이 나면 손수건에 물을 뭍혀서 화장실에 가서 온몸의 땀을 닦아주고. 아침에 손가락에 프로토픽 연고를 잔뜩 발라주는 건 잊지 말아야하는 중요한 일과지. 찐득한 연고를 바른채로 핸드폰을 해야 하는게 성가신 나의 일상다반사고. 뭐, 그리고 그 외의 수십가지 아토피를 위한 일상의 습관 기타 등등은 말해뭐해 ㅎㅎ 잠자기 전에 손가락에 듬뿍 바른 프로토픽 때문에, 남편이 내 손을 잡고 자고 싶어해도 미안한듯 거절하며 손에 연고발랐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건 말해야겠다, 참.
내가 24년 여름의 너에게 걱정이 되는 건, 23년의 우울보다 더 깊은 우울이 되진 않았냐는 거야. 올해 내가 느낀 우울은 이전보다 새로운 우울이 몇 스푼 더 첨가되었는데, 그 이유는 해가 가도록 이 우울들이 계속 찾아온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야. 아토피가 점진적으로 나아지기는 커녕, 나는 똑같은 계절, 같은 시기에 항상 아토피가 심해지고, 항상 우울해하는 것들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잖아.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만 할 것 같잖아. 그래서 해가 갈수록 더 우울감이 한스푼씩 추가되고 있어. 24년의 너는 어떻니. 모쪼록 괜찮았으면 좋겠다. 지금 그 순간 어떤 것이든 너를 자책하지 않았으면 해. 운동을 꾸준히 했더라면 나아졌을까, 식이요법을 더 했었어야 하나. 보통의 건강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데, 이 시기를 대비해서 그렇게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힘든 일이고 , 그랬을 때 난 정말 괜찮았을까?에 대해 나도 대답하지 못하잖아. 아토피는 그런거니까. 노력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하는 것이니까.
이 우울의 깊은 끝이 어딘지는 모르고, 언제 이 기간이 끝날지, 어떻게 하면 그 우울의 감정이 다시 일상의 감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이런 건 난 아직 몰라. 24년의 너는 알 수 있을까. 그나마 희망적인 건, 언제나 우울에도 끝이 있더라. 아주 깊이 들어갔다가, 바닥을 찍고 조금씩 올라가고 있어. 조금씩 올라가는 힘이 되찾아져서, 어제는 하루 종일 무조건 나를 칭찬해줬다. 밥 한술만 먹어도, 그래, 잘했어. 널 무조건 칭찬할거야. 웹툰을 보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래, 나는 무조건 너를 칭찬할거야. 마구마구 무조건 나를 칭찬하기. 그래, 이렇게라도 나를 우울의 늪에서 위로 조금씩 올려줘야지. 오니님이랑도 전화를 했는데 조금 후련했어. 해결책을 내주지도 아니, 낼 수도 없는일이 아토피지만, 어디 말 못하는 이 고민을 나는 안다고 말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거 있잖아. 엄마도 남편도 나를 이해하려고 매우 노력하지만, 나의 아토피에 대해 겪어보지는 못했으니까, 경험자끼리 알아듣는 공감, 그게 위안이 돼.
이번달 말 주말에는 아토피 환우들을 위한 심리상담 세미나를 한데. 오니님 덕분에 신청하게 되었는데,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인 '아토피'를 가지고 상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기대가 돼. 상담사분들이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한번 해보는 거지 모. 그게 24년 여름을 겪는 너에게 도움이 조금 되면 좋겠다. 여름 밤이지만 조금 덜 긁고 편히 자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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