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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염려 대상이던 막둥이인 내 동생이 안정적으로 국립대 대학생으로 안착한 해, 3월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같은 달에 엄마가 퇴직을 하셨다. 

 

퇴직 후 두어 달 동안 엄마는 즐겁게 쉬셨다. 

낮잠도 푹 자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마음껏 보고, 이모네도 놀러 가고, 보고 싶었던 친구들도 보러 다녔다. 

 

문제가 생긴 건, 한 5월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힘들다'고 했다. 우울하다고, 무기력하다고. 

엄마 스스로도 엄마가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울증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엄마의 말을 듣고 슬펐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그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눈물이 났다.

 

일단, 나는 처음 겪는 감정으로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울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고, 자주 카톡을 했고, 애정표현을 늘리고, 엄마에 대한 칭찬을 하나씩 찾아서 전했으며, 엄마가 존재만으로도 값지고 소중하다고 항상 상기시켜드렸다. 

지금까지 엄마의 중심은 우리 세 자매였지만, 이제는 엄마를 중심으로 살 수 있는 인생의 순간을 맞이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그 순간을 맞이한 걸 축하드린다고, 엄마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우리 세 명이 번갈아가며 엄마의 젊음, 에너지, 체력, 감정, 그리고 꿈까지도 모든 걸 가져가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버려서 엄마가 마음이 허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앞으로 엄마의 삶을 엄마의 것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것을 응원하고 보탬이 될 것을 꼭 약속한다고 했다. 

 

엄마가 느끼는 그 감정과 과정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으니, 이런 느긋한 시간도 오는 게 아니겠냐고. 엄마의 감정과 상황에 깊이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간혹 언니와 동생에게 강압적으로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압박을 넣긴 했지만. 

그리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사랑하는 엄마.

 

얼마 전부터 읽던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의 한 대목에서,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책은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만큼 '죽음'에 관한 내용이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가장 큰 죽음의 원인인 '자살'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자살의 원인이 세 가지 정도로 소개되는데, 두 번째 자살 원인을 읽으면서 곰곰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우울감을 느끼게 된 원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179쪽.

엄마는 퇴직 전에 8여년 간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셨다.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고, 가르치고, 웃고, 혼내며 소통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한다. 

또 어는 기관의 일원으로 안정된 소속감도 느끼셨었을 것이다. 

 

퇴직을 하면서, 조직에서의 소속감, 아이들과의 소통 창구를 잃었다. 

인정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열망인데, 사회에서 나의 자리가 없어지고, 그것이 고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느껴지면 참담할 것 같다. 

 

대화하고, 엄마의 생각을 나누는 것,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퇴직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참 외로운 현실이었을 것 같다. 

그 후에 몇 개 안 남은 소통 통로들 중에도 몇 개는 별 쓸모없는 소통 창구라면?

나의 이야기나 감정교류가 어려운 창구라면?, 정말 절망적이겠지.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점점 나이듦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도 엄마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통통 튀는 아이들을 감당하기엔 환갑이 다 된 엄마에겐 힘이 부칠뿐만 아니라 아이들과의 교류에 거리감도 느껴졌을 테니까. "학생들이 엄마를 가끔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해."라거나 "아이들도 기관도 젊은 선생님을 좋아해."라고 종종 엄마가 했던 말을 유추해보면 그렇다.  노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타의적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존재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진 않으셨을까. 

 

사랑하는 엄마. 

벌써 엄마가 퇴직 후 우울감을 느낀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요즈음은 엄마랑 잘 맞는 정신의학과에 내원하며 가벼운 우울증 약도 처방받으신다. 약을 드시면서, 호르몬 조절의 도움을 받아 우울한 감정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 걸 연습하신다. 스스로를 위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엄마는 엄마의 친한 친구들과 지인들을 모아 걷기모임을 만드셨다. 한 달에 한 번 인근 야트막한 산이나 둘레길을 걸으며 모임 활동을 하고 계신다. 모임원 회장이 되신 분이 회장턱으로 맛있는 것도 사줬다고 기뻐하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함께 기쁘다.  모임원들과 함께 지역 걷기 축제도 만들 거라는 포부를 얘기하는 엄마가 즐거워 보인다. 엄마가 축제를 하게 되면 나도 가서 신나게 엄마랑 걷다가 와야지.

항상 응원해요,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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